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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형사사건은 왜 이렇게 느려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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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4 11:25 조회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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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신고 안 할 걸 그랬어요.” 3년 전 납치 강간현장에서 탈출한 후 신고한 아동이 올해 초 성인이 되어 한 말이다. 이 사건은 아직도 수사 중이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계속 이사를 다니는지 이송만 4번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바뀐 수사관도 열 명은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사건이 처리되기를 기대하기는커녕 어느 기관에 사건이 가 있는지 묻는 것도 지칠 지경이다. 문제는 신고 후 1년이 훨씬 넘도록 수사기관만 뱅뱅 맴도는 이런 사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 등 6대 중대 범죄로 한정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지연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이달 초 대검찰청이 발표한 ‘개정 형사제도 시행 1년 검찰업무 분석’을 보면, 경찰은 2021년 한 해 69만2606건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 중 12.3%에 달하는 8만5325건의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송치 후 재지휘한 경우가 전체 37만7796건 중 1만3365건(3.5%)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수사에 검사가 보완을 요구한 비율은 3배 이상 늘었다. 이러한 ‘핑퐁’ 사건 폭증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달라진 수사실무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있었다. 당시에는 경찰이나 검찰 모두 고소나 고발을 받았고, 그중 검찰로 최초 접수된 사건은 검사가 수사지휘서를 붙여 경찰로 보냈다. 경찰로 최초 접수된 사건이라도 수사 후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을 붙여 전부 검찰에 보내야 했기에 송치 이후는 검찰이 관리하는 사건이 되었다. 

수사권 조정 이후에는 고소나 고발을 경찰에만 할 수 있고, 검찰은 경찰에서 어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경찰에서 불송치결정을 한 사건은 검찰에 사건 기록만 송부된다. 결국 검찰은 불송치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으로 인해 송치된 사건이나 경찰이 송치의견을 붙여 송치한 사건만 살펴보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사건기한 관리 실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거의 모든 사건이 검찰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수사지휘가 가능했고, 이렇게 검찰이 관리하는 사건은 기소 또는 불기소로 종결될 때까지 한 개의 검찰사건번호(이른바 ‘형제번호’)로 관리되었다. 중간에 담당하는 검사가 바뀌더라도 같은 사건번호가 유지되었기에, 얼마나 오래 수사되고 있는 사건인지 빈틈없이 파악하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 이후에는 ‘수사지휘’라는 개념이 없어졌기에,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 요청을 하면 그 사건은 검찰청에서 마법같이 사라지면서 검찰사건번호도 삭제된다. 사건이 보완수사되어 검찰로 돌아오는 것은 괜히 없던 혹을 붙이는 격이기에, 빨리 보완해달라고 경찰에 재촉할 필요도 없다. 신속한 사건처리는 근무평정에 중요 요소로 비교적 철저히 관리되었지만, 지금은 무의미해진 것이다. 돌아온 사건은 같은 사건이지만 새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사건이 이렇게 분절적으로 관리되면서 담당 수사관도 자꾸 바뀌고 사건은 산으로 간다. 

수사지연은 생각보다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거의 모든 범죄는 ‘공소시효’가 있고, 이 시효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기소하고 싶어도 기소할 수 없다. 결국 수사지연은 범죄자를 법의 심판에서 풀어주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해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제도의 골이 오히려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단절시켜 사건처리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수사기관의 장기보유사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이 수사지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228030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