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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립준비청년들의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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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4 11:34 조회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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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열여덟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있다. 부모 이혼과 가정 빈곤으로 초등학생 때 아동양육시설에 입소한 A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시설 생활이 몹시 답답해졌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자퇴하고 시설에서 나왔다. B는 첫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가출한 이후 아버지와 살아왔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와 대립이 심해졌고 이웃의 아동학대 신고로 쉼터를 거쳐 공동생활가정에 살게 되었다. 낯선 그룹홈 생활은 녹록지 않았고 학교 친구들도 그리웠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br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매년 2600명 정도의 자립준비청년이 사회로 나오고 있다. 아동복지법상 ‘보호대상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종료아동’이 된다. 지난 8월 정부는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명칭을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꾸는 내용을 포함한 자립지원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경제적 자립과 주거지원이고, 이를 위하여 자립지원전담기관과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첫째, 지원 대상의 공백이 많다. A와 B 모두 보호대상아동이었지만, 중도에 퇴소한 A와 원가정으로 복귀한 B는 자립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보호종료 후 자립지원을 받으려면 오직 ‘아동복지법’상의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 살다가 보호종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복지지원법’상의 청소년쉼터에서 10년 이상 살다가 퇴소를 한 경우에도 이 자립지원을 받을 수 없다. 

둘째, 원가정과의 관계 지원이 없다. 원가정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어 가정 외 보호에 놓인 아동이라도, 가족이라는 천륜은 아동기를 지나 성인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아동의 보호계획과 자립지원은 처음부터 실과 바늘처럼 연결되어야 마땅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정 외 보호 중인 보호대상아동의 3분의 2 정도는 친부모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시설에 산다. 심각한 아동학대 또는 부모의 약물중독 등 극단적인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아동을 가정 외 분리 보호하는 외국에 비하여 우리나라 가정 외 보호 아동의 원가정 복귀 비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보호계획과 자립지원 간 단절의 뿌리는 원가족과의 관계지원 부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보호대상아동을 시설에 모아서 손쉽게 관리하려 하기보다 아동의 원가정을 지원하여 원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면 아동은 심리적 안정 속에서 자립할 힘을 얻는다. 

셋째, 심리·정서적 지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현재 자립지원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 지원이지만,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볼 수 있는 정서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설에 보호되는 중에는 사소한 행동도 통제받거나 과보호되다 자립의 시기에 갑자기 어른의 역할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보호종료아동 실태조사에서는 2명 중 1명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이 막중한 일을 누가 할 것인지 전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정부는 전국 시·도별로 17개의 자립지원전담기관을 만들고 담당자를 더 많이 배치할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 보호대상아동의 자립지원 전달체계는 중앙의 아동권리보장원과 광역 단위의 자립지원전담기관, 가정위탁지원센터, 자립지원시설, 통합사례관리사, 자립지원전담요원 등이 있다. 하지만 지역별·보호유형별 지원 인프라에 편차가 크고, 심지어 새로 설치되는 지역의 자립지원센터들은 사실상 또 다른 생활시설로 개소하는 곳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지원대상인 보호종료 후 5년 이내의 자립준비청년이 연간 1만3000명 정도에 이르지만, 현재 아동양육시설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전국에 3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자립준비청년은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간다. 어떤 상황에서 보호가 종료되었는지에 관계없이 존엄한 한 사람으로 어른의 초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출처: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101030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