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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범소년이 아니라 위기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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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4 11:47 조회1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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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숨고 싶은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 잠시 그 시절 나에게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한 적이 있는지 한 번 물어보자. 첫째,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 적이 있었다. 둘째,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한 적이 있었다. 셋째,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을 접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사람을 소년법은 ‘우범소년’이라고 본다.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의 아동을 말한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br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그런데 이런 아동은 어떻게 취급받고 있을까? 우범소년을 발견한 보호자 또는 학교의 장, 시설장, 보호관찰소의 장은 이를 관할 법원의 소년부에 알려 아동을 소년보호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법원 소년부로 통고된 아동은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될 수 있다. 아동이 12세 이상이라면 최대 2년의 소년원 처분도 가능하다. 

13세 아동 A는 아주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한 살씩 먹어갈수록 뭔가 남들과 다른 삶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시설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규칙들이 점점 숨 막히게 한다고 느낀 어느 날, 충동적으로 보육원에 복귀하지 않았다. 시설장은 A를 우범소년이라며 가정법원에 통고했다. 재판날 무서워서 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A는 더 규율이 엄격한 소년보호시설에 입소당했고, 거기서도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았다고 보호처분이 변경되어 소년원에서 몇 년간 살아야 했다. 

12세 아동 B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물론 잘못 걸리는 날은 B도 매질을 당해야 했다. 집에 있는 것이 무섭고 싫었기에 외박도 하고 선배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했다. 오히려 집 밖이 집 안보다 안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B가 못마땅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이를 경찰서에 데려갔고, 경찰서에서는 B가 우범소년이라며 가정법원에 송치했다. 아무런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던 B는 졸지에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가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집에서는 도저히 키울 수 없다’고 난리를 치는 부모 탓에 B는 낯선 시설에서 살게 되었다. 

‘아동도 인권이 있다’는 말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정작 이 사회는 법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동을 나누어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학대피해아동’이나 ‘위기청소년’은 보호받아 마땅하지만, 이미 싹수가 노란 ‘우범소년’은 가차 없이 사회의 매운맛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것 같다. A와 B는 학대피해아동이자 위기청소년이었지만 우범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재판에 회부돼 범죄자 아닌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서울소년분류심사원의 우범소년 실태 분석을 보면, 2020년 1월부터 10월까지 우범 사유로 위탁된 267명 중 80.5%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구금 처분을 받은 비율도 50%로 나타났다.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아동이 보호관찰을 받고 구금되고 있다. 비슷한 상황의 어떤 아동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피해아동으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의 ‘학교 밖 청소년’으로, ‘청소년복지지원법’의 ‘위기청소년’으로 지원을 받고 있는 것과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 우범소년 규정 삭제를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 소년보호혁신위원회도 우범소년 폐지를 권고했다. 심지어 지난 1월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도 폐지되었지만, 국가가 부모 이상의 과도한 제약을 행사하는 이 우범소년 통고제도는 버젓이 남아 있다. 다행히 지난 1월 소년보호사건의 대상에서 우범소년을 제외하는 소년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앞서 자문해 본 세 가지 우범 사유는 아동이 처한 위기상황을 알리는 신호이다. 아동이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미리 범죄자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냐’면서 사회가 먼저 손 내밀며 이 아동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51003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