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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안의 소수성 찾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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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4 11:51 조회1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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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큰 고민이 있었다. 결혼하기로 한 애인이, 결혼식 마치고 열흘 만에 입대해서 3년간 의무 군복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나는 군대에 함께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여성 수료생이 군법무관을 지원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고, 성적도 안정권이었기에 지원만 하면 별 문제없이 함께 입대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다. ‘한쪽 눈에 시각장애가 있으니 지원해도 서류 통과도 어려울 것 같다’는 비공식적인 의견을 전해듣게 된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학창 시절의 체력장 특급 기록과 검도 단증, 대회 입상 경력을 어필했지만 ‘장애인은 군법무관에 지원할 수 없다’는 내부 의견은 변함없었다. 주변에서도 동반 입대를 다들 말리던 중이라 얼른 마음을 접었으나, 그 납득할 수 없었던 거절은 차별로 남아 지금도 마음 한편을 긁는다. 

존재에 판단을 들이대는 순간 우리는 차별을 경험한다. 그 차별이 혐오로 표현될 때 받는 타격감은 일부 극소수만 겪는 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변희수 하사 전역조치 사건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87.6%가 “해당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응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고자 하는 시민이 많아지면서 성별, 연령, 장애,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최근에도 귀한 생명이 여럿 세상을 등졌다. 속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필요가 있지만 혐오나 차별에 대한 법적 규율이 과연 사회를 단번에 바꿀 수 있을까.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일은 국가에 의한 금지보다 일상적·문화적 변화를 통해 좀 더 촘촘해진다. 존재가 존재를 상호 인정하는 연습 없이는, 차별은 말과 행동으로 연결된 개인의 삶에 쉽게 침투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상호 인정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누구나 소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안의 소수성을 찾으려 노력하면 이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가 된다. 

강남에서 태어나 유명 외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이와 ‘소수 인종으로서 경험해야 했던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겠네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니에요”라며 그가 털어놓은 대답은 희귀한 그의 성(姓)이었다. 특이한 성씨라는, 단지 그 이유로 늘 놀림을 당하던 학창 시절의 괴로움이 커서 판결로 성을 바꿀까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아무리 ‘다 가진 자’라 하더라도 어느 부분의 소수성은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나아가 자신에게는 소수성이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특정 ‘상황’ 아래 얼마든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통계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50대 남성이라도 얼큰하게 취해 걸어가는 뒷모습에 ‘개저씨’라고 불릴 수도 있고, 소위 ‘정상 가정’을 이루어 육아 중인 엄마라도 많은 사람이 있는 어떤 장소에서 ‘맘충’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걷어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인 차별을 걷어내고자 하는 일상의 노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직장에서 직책을 떼고 ‘○○님’이라 부르는 일은 계층적 지위에 의한 권력관계 대신 평등한 동료로서 관계 맺기를 위한 걸음이 된다. ‘라테는 말이야’라는 한 문장이 얼마나 큰 사회적 각성을 가져왔는가. 

고 김기홍님은 마지막 SNS 글에서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그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적었다. 모욕이 아닌 존중이 일상이 되는 세상은 내 안의 소수성을 찾는 연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출처: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315030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