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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애인 피의자 양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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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16 23:38 조회6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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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1 한겨레 칼럼

 

지난달 말,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한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쌍둥이 아들은 둘 다 선천성 중증 자폐성 장애인인데, 그중 한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을 것 같다는 하소연이었다. 곧 군대를 가야 하는 그 청년의 장애 특징은 ‘특정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데, 열흘 전쯤 지하철역 출구를 나오다가 근처 포장마차 손님의 휴대전화 벨소리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손님을 쫓아다니는 작은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도망다니던 손님이 그 난데없는 상황을 인근 지구대에 알려 경찰이 출동했고, 청년은 스스로 진정을 하고 갈 길을 다시 가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통상의 사건 처리와 비교해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인지한 지 나흘도 안 되어 검찰에 송치되었다. 송치 이튿날 검찰은 이 청년의 어머니에게 연락해 합의를 할지 벌금을 낼지 물었고, 그 다음날엔 피해자들이 연락이 안 되니 그냥 벌금을 내라는 취지로 알려왔다고 한다. 경찰 현장 출동 후 검찰 처분 직전까지 걸린 날짜는 불과 6일이었다. 보기 드문 일사천리의 처리 속도다.


2015년 경찰청에서 발간한 ‘장애인 수사 매뉴얼’에 따르면, 수사 초기 △피조사자의 장애인 여부를 확인할 의무 △피조사자가 장애인일 경우 신뢰관계자 동석 가능 사실 고지 및 실제 동석하게 할 의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을 위해 의사소통 관련 조력(보조인력, 점자 자료, 대독, 음성지원시스템 등)을 제공할 의무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경찰은 ‘딱 봐도 장애인’이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듣고도 그 청년에게 장애인 여부를 확인하지도, 신뢰관계자 관련 설명을 하지도 않았다.


청년의 어머니는 이미 초기 조사가 끝난 뒤 경찰서로 사건이 넘어간 다음에야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이런 처리 속도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약식기소가 될 것 같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즉시 의견서를 작성해 어머니 편에 검찰에 송부했다. 청년의 장애 특성, 수사 과정상의 위법·부당한 점 등이 고려되어 다행히 청년은 전과자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빈번히 일어난다. 사회구조적인 일임에도 개선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경찰공무원은 좋은 근무평점을 받기 위해 인지사건의 기소율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자기변호나 옹호가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식기소에 이르지 않는 경미한 사건은 대부분 법관의 피고인 대면심리가 없는 약식기소로 처리된다. 매년 발간되는 <사법연감>에는 약식 사건 피의자 중 장애인의 비율 관련 통계도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 결국 장애인 피의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고, 경찰은 어떠한 사건이라도 인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장애인이라고 해도 형사상 잘못을 했다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사 초기 피의자에 대한 정보를 입력할 때 장애인 관련 기초정보(등록 여부, 등급 유형 등)를 입력할 아무런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수사 개시 이후 장애인에게 법령상 방어권을 보장하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형사처벌 절차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진행된다. 자기옹호가 어려운 장애인이 그 신중한 과정의 예외로 치부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이미 장애인과 함께 한 지역사회에서 공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예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