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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자문]“장애인도 휴대폰 쓰기 쉽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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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16 23:00 조회1,7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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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 2015. 2. 2. 최호섭 

몇 년 전 이동통신사들이 영상통화를 주력 상품으로 밀던 때, 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언어장애인이 영상통화를 통해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었습니다. 시장의 분위기는 통화할 때 비싼 돈을 내며 얼굴까지 봐야 하냐고 물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화의 새로운 용도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장애인들에게도 휴대폰은 중요한 통신 수단이 된 것이지요.

얼마 전 한 선배가 제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요지는 ‘장애인인 가족이 있는데 텔레마케팅의 복잡한 마케팅에 새 휴대폰을 구입해버렸다’는 겁니다. 이 건은 결국 개통을 철회하는 것으로 수습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통신사의 영업이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애인까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선배의 가족이 현재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을 쓰고 있는데 인터넷 접속 버튼을 잘못 눌러 요금이 청구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겁니다. 지난 달만 해도 인터넷 요금만 150만원이 청구됐다고 합니다. 통신사와 협의를 거쳐서 청구 요금의 절반만 내기로 하고 마무리가 됐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선배의 목소리에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장애인에게 휴대폰은 필수품이면서도 위험한 양날의 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인 노린 명의 도용, 소액결제 조심해야

 

자, 개통 사고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위에서 겪은 사례는 현장을 지켜본 사람이 없었기에 100%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 장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휴대폰을 팔려고 했던 판매점은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장애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고 영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례를 알아보다 보니 지적장애인을 속여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는 “지적장애인에의 명의를 도용하기도 하고, 어려운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판매점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설령 범죄 목적이 아니더라도 판매점들이 통화중에 장애인인줄 알았을 텐데도 억지로 고가의 새 스마트폰을 떠넘기는 것은 마땅히 잘못입니다. 알아보니 지적장애인들에게 고가의 휴대폰을 판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봐서 장애인의 명의를 도용하고 수백만원의 요금을 떠넘기는 범죄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원치 않는 이동전화 구입과 서비스에 대해서는 가입 후 14일 이내에 개통을 철회하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불편한 것은 통신 서비스뿐이 아닙니다. 응용프로그램(앱)들도 장애인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가입과 요금제 등에 대해 어려운 용어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되지만 스마트폰과 응용프로그램의 복잡한 기능들도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습니다. 또한 지적장애인들은 요금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에 약합니다. 통신 서비스 뿐 아니라 스마트폰 게임 등 애플리케이션에서도 결제를 하도록 이끄는 장치들에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김예원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는 것들이 장애인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앱 접근성 표준도 국가 표준으로 갖춰져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빠른 앱 시장의 흐름이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요.

 

 

“무선인터넷 요금 폭탄 조심하세요”

 

두 번째로 원치 않는 서비스 이용에 대한 이야기도 살펴보겠습니다. 뭔가 잘 못 눌러서 큰 돈이 나오는 서비스는 대체로 전화 그 자체의 기능보다 인터넷 접속쪽이 많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요금제를 쓰지 않고 피처폰으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요금이 청구됩니다. 과거에 휴대폰용 VOD 서비스가 처음 나왔을 때 영화 한 편 보고 수십만원이 적힌 요금 청구서를 받은 청소년들에 대한 뉴스가 많았는데 비슷한 사고가 장애인들에게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은 무선인터넷이 필요 없고, 본인이 스스로 인터넷을 쓰길 원하지 않는다면 통신사에 ‘무선데이터 차단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해당 번호로는 무선 인터넷에 아예 접속하지 못하도록 기지국 단에서 차단이 되는 것이지요. 이 부가서비스는 무료입니다. 휴대폰에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할 수도 있지만 아예 서비스로 막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혹시라도 장애인이 뜻하지 않게 인터넷을 많이 사용했다면 고객센터와 협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신사들도 장애인들이 원하지 않게 쓴 서비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구제하겠다는 입장을 비췄습니다. 통신사들은 쓰지 않은 서비스로 과도한 요금이 청구됐을 때 장애인이라는 점, 그리고 서비스를 쓰지 않고 사고가 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면 사안에 따라 적절하게 감면을 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성인이 스스로 버튼을 누르고 서비스를 썼으니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법적 해석이긴 합니다.

 

다만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점을 내세워 장애인 전용 요금제도나 요금 감면 혜택 혹은 과다 청구액에 대한 반환까지 악용하는 사례도 꽤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장애인을 이용해 슬쩍 넘어가는 데 대한 피해가 고스란히 장애인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겠습니다.

 

 

“장애인용 요금제 적극적으로 쓰세요”

 

장애인이라면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 장애인 전용 요금제를 쓰면 좋습니다. 통신사들은 장애인들에 대해 요금 할인 혜택도 마련했지만 전용 요금제를 내놓기도 합니다. 대개 요금은 35% 정도 할인해주고, 문자메시지는 70%까지 할인합니다. 또한 장애의 형태에 따른 맞춤 요금제도 있습니다. 특히 수화를 이용하기 위한 영상통화가 많이 필요한 청각·언어장애인에게는 영상통화에 특화된 요금제가 아주 유용합니다.

 

KT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KT는 지적장애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15000’ 요금제, 청각장애인을 위한 ‘손말 나눔’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복지15000은 청소년들을 위한 ‘알’ 요금제와 비슷합니다. 월 1만5천원에 알 1만개를 줍니다. 이를 통화나 메시지, 데이터로 나누어 쓸 수 있습니다. 통화료는 음성과 영상에 관계 없이 1초에 3알을 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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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말요금제는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것으로 영상통화에 최적화된 요금제입니다. 월 기본요금 1만4천원에 영상통화 100분과 문자메시지 500건이 제공됩니다. 추가로 쓰는 음성통화는 1초에 1.8원, 영상통화는 초당 3원의 요금이 청구됩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장애인을 위한 요금제도 있습니다. ‘스마트 소리나눔’과 ‘스마트 손말나눔’ 요금제로 음성·문자메시지, 데이터가 제공되는 일반적인 스마트폰 요금제입니다. 피처폰용 요금제와 마찬가지로 언어장애인을 위한 영상통화가 추가로 제공되기도 합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SK텔레콤은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요금제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요금제를 분리합니다. 각각 손사랑, 소리사랑이라고 이름도 붙였습니다. 필요에 따라 데이터를 1~3GB까지 제공하면서도 영상통화 혹은 음성통화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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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도 ‘복지’ 요금제를 운영합니다. 1만6천원대 요금제부터 문자메시지, 영상통화에 각각 특화된 요금제를 운영합니다.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요금제의 기본 골격은 비슷합니다.

 

통신사에 장애인을 위한 요금제 설계를 해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대체로 ‘통신사가 먼저 나서서 요금 설계를 언급하면 장애인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곤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뒤따르고 있긴 하지만 통신과 스마트폰이 장애인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서비스도, 정책도, 앱도 한번씩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