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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개선] "정인이법, 정인이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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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2-18 14:12 조회1,1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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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아동학대 형량을 강화한다고 하는데요. 변호사님 생각은…” 질문이 끝나기 전에 답이 돌아왔다. “아, 제발. 제발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돼요. 그거 정인이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 정신 차리라고 전해주세요. 아니 제가 얘기할게요.”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인권피해를 겪는 장애인·여성·아동의 소송을 전담해온 공익변호사다. 숱한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김 변호사에게도 정인이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사건을 접하고 일주일간 수시로 눈물이 터져나왔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어서다. 김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쏟아낸 이른바 정인이 법들은 졸속 입법을 넘어선 개악 입법이라고 말했다.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을 ‘힘’ 있는 어른들이 엉뚱한 곳에 힘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왜 정인이법을 반대할까. 1월 5일 광주의 한 독립서점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 반기웅기자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 반기웅기자

-국회에서 제때 움직인 것 아닌가. 왜 형량을 높이면 안 되나. 

“세게 처벌하자는 취지는 나도 이해한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라는 게 아니다. 국회에서 하는 형량 강화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법으로 형량을 올리면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에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정형이 높아졌다. 그랬더니 기소가 안 된다. 장애인 여성을 가둬놓고 빵과 우유만 먹이면서 끔찍한 짓을 벌였는데도 기소가 안 됐다. 왜? 법정 하한이 높아서다. 형량이 높아지니까 입증 자신이 없는 사건, 피해자 진술이 증거인 사건들은 죄다 불기소된다.”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에서 불기소한다는 얘기인가. 

“형량이 세진다는 건 그만큼 피해를 입증할 책임이 커진다는 의미다. 검찰이 ‘이 정도 증거로 유죄를 받아낼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기소를 안 한다. 재판을 받는다고 해도 원하는 것처럼 가해자를 세게 처벌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법정형 하한 15년짜리 사건 재판을 받는다고 해보자. 법정형 하한 2년짜리 때와는 재판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집을 팔아서라도 비싼 변호사 여러명을 사서 사생결단으로 대응한다. 판사도 형량이 센 사건이다 보니까 더 구체적이고 높은 수준의 증거를 요구한다. 피해자가 확보한 증거가 판사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죄판결을 받고 끝난다. 아동학대 사건은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가해자가 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센 처벌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 기준을 올리면 된다. 국회는 법정형 하한선을 올리는 법을 만들 게 아니라 이런 뜻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내는 게 맞다. 이런 방식으로 법을 만들면 튀어나온 악마 몇명만 처벌하게 된다. 애써 만든 법이 불쑥 삐져나온 새치 몇개를 뽑는 핀셋 역할밖에 못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악마에 이르지 못한 대다수의 가해자가 수면 아래로 묻혀버린다. 아동학대 사건을 생각할 때 우선순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몇몇 악마를 처단하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받는 아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 보호하는 게 중요한가. 제2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으려면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에서 <펜트하우스> 주단태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면? 수사조차 받지 않을 것”
 

-아동학대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개인적으로 아동학대자들은 신상공개를 하면 좋겠다. 사건을 대리하면서 가급적 모든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런데 신상공개는 지금 이 상황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다. 신상공개를 1순위 해결책으로 던지는 순간 사건의 본질이 희석된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더 캐물어야 하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런데 신상공개가 대책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사건의 본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게 된다. 분명한 건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는 사람 중에 신상공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정인이 사건을 보고 ‘한국의 아동보호 시스템이 정말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나. 믿을 수 없다’는 분들이 많았다. 

“정인이는 첫 번째 신고 이후에 즉시 분리됐어야 마땅했다. 신고 주체가 의료인이면 바로 분리할 수 있다. 신체에 폭행 상흔이 있으면 즉시 분리가 가능하다. 정인이를 본 의사와 어린이집 선생님, 이웃 주민까지 아동학대라고 신고했다. 그런데 왜 분리가 안 됐을까. 한국에는 전형적인 아동학대 ‘상’이 있다. 아동학대는 못 배운 집, 가난한 집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잘사는 집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고 단정 짓는다. 정인이 사건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경찰이 ‘직장도 괜찮은 번듯한 집에서 설마 애를 때리겠어’라는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충남 천안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도 마찬가지다. 아동학대는 못사는 집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가정형편과 무관하게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주단태가 자식들을 수시로 폭행한다. 10년 전쯤 누군가 주단태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면 그는 처벌받았을까. 아마 ‘이런 부잣집에서 아동학대가 있을 리 없다’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전문성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편견과 틀에서 벗어나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안데르센 공원묘원./김창길 기자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안데르센 공원묘원./김창길 기자

■ “즉시 분리된 아이들, 갈 곳이 없다”

 

-2회 이상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학대 의심 가정으로부터 피해아동을 즉시 분리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아예 1회 신고 시 즉시 분리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정부가 계속 즉시 분리를 강조하니까 모든 얘기가 즉시 분리로 흐른다. 즉시 분리 논의에 앞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현행법만으로도 1회 신고 즉시 분리가 가능하다. 이번 비극은 즉시 분리 제도가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해야 할 질문은 ‘당신들은 왜 즉시 분리를 하지 않았는가’이다. 우리는 아직 거기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예를 들어 ‘그런 법이 있는지 몰랐어’라던가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아동학대라고 생각을 못 했어’라던가. 그런데 그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답을 듣지 못했는데 정부는 ‘앞으로 2회 신고하면 즉시 분리할게’라는 엉뚱한 대답을 반복하고 있다. 기존 법과 매뉴얼이 왜 작동을 하지 않았는지, 어디에서 멈췄는지 정확히 아는 게 우선이다. 원인도 모르면서 ‘3회보다는 2회가 낫지. 아니 아예 1회로 하자’ 이런 식의 논의는 숫자놀음밖에 안 된다. 아동학대는 숫자로 풀 문제가 아니다. 천안 아동학대 사건은 1회 신고 후에 아이가 사망했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제12조에서는 재학대의 위험이 급박·현저한 경우, 경찰 또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피해아동 격리 보호 등 응급조치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시 분리가 답이 아니라는 얘기인가. 

“즉시 분리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준비 없는 무분별한 즉시 분리가 문제라는 거다. 즉시 분리하면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즉시 분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 지금도 분리 조치된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떠돈다. 복지부에서 운영하는 학대피해 아동쉼터는 포화상태다. 지금도 쉼터에 못 가는 아이들은 보육원에 보낸다. 여기도 자리가 없으면 가출청소년이 모여 있는 시설로 간다. 학대 상처 치유가 시급한 아이들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다. 갈 곳도 없는데 무작정 분리가 능사인가. 기계적인 즉시 분리로 지옥 같은 집에서 살던 아이들은 또 다른 지옥에서 살 게 될 수 있다. 정작 분리 조치 받아야 할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때를 놓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계적 분리는 답이 아니다. 분리가 필요한 아이들을 제때 분리하는 게 답이다.”
 

■ “아동학대, 전문성 갖춘 전담 경찰이 수사해야 막는다”

-그러면 아동학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아동학대전담 공무원에게 권한을 더 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또 다른 아동인권보호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금도 사공이 너무 많다. 권한을 가진 주체가 많아질수록 사건은 복잡해지고 해결은 더뎌진다.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조사·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주체는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이렇게 셋이다. 먼저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전담’ 공무원이 됐다.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보전에서 하던 조사 업무를 맡게 됐는데 조사는 전문성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잘할 수 없는 일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열의를 갖고 덤볐다가도 ‘번아웃’되기 십상이다. 공무원이 잘하는 일은 행정 업무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필요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기면 된다. 아보전은 피해자 케어에 집중하고 조사와 수사는 경찰이 주도하는 게 맞다. 자치경찰제 시행과 수사권 조정으로 아동학대 사건은 오롯이 일선 경찰몫이다. 그런데 아동학대 사건은 ‘경찰 아무개’에게 맡기면 안 된다. 전문 경찰이 담당해야 한다.
 

-경찰이 아동학대를 제대로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성폭력특별수사대(현 여성범죄특별수사대)에 답이 있다. 성폭력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일선 경찰서에서 사건 처리를 엉망으로 했다. 2차 피해당하고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광역 지자체 단위로 성폭력특별수사대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지원을 집중했다. 경험을 쌓아 전문성을 갖출 수 있게, 성폭력 사건 중에서도 중요사건은 여기서 전담한다. 성폭력특별수사대에서 하는 사건은 피해자 변호사들이 신뢰하는 편이다. 전문성이 있고, 어떻게 하면 2차 피해를 생기지 않을까 피해자들의 심리도 고민하면서 수사를 한다. 성폭력특별수사대에서 착안해 광역단위로 아동학대범죄특별수사대를 운영하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3세 미만 아동, 2회 이상 신고된 아동, 기관(병원 등)에서 신고한 아동 관련 사건을 주요 사건으로 정해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지금보다 전문성 있는 수사가 이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원문보기: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091332001&code=940100#csidx138526c09f9e714b9df13998bfffa23 onebyone.gif?action_id=138526c09f9e714b9df13998bfffa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