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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변이 사는 法] “장애인 인권 보호, 거창한 법보다 사회 인식 전환이 우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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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17 22:37 조회5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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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37) 변호사의 하루는 짧다. 그는 비영리 1인 법률사무소인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며 부당한 일을 당한 장애인들을 무료로 대리하는 일을 한다. 지난 2~3월에는 혼자서 18건의 장애인 인권침해 소송을 지원했다. 경찰 단계의 사건부터 검찰 불기소에 대한 항고,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 등 장애인 인권 문제라면 가리지 않는다. 소송뿐 아니라 제도 개선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학대 피해 장애인 법률 지원 매뉴얼 작업,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장애인체육회 인권 신장을 위한 규정 개정 활동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난 19일 김예원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장애인권법센터에서 만난 김예원 변호사는 “많은 장애인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며 “특히 장애인 중에서도 더 취약한 장애 아동, 장애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장애인 인권, 느린 걸음이지만 조금씩 전진

“장애인 인권 침해 사건의 경우 피해 당사자를 만나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직접 들어보면 대부분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발화(發話)가 안 되는 중증 장애라 해도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상황을 추단해낼 수 있거든요. 소송으로 잘 이어지지 않을 뿐이지, 피해자들의 승소 가능성은 무척 큰 사건이 많아요. 그만큼 장애인들이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한다는 얘기겠죠.”

지난 2017년 그가 맡았던 항고 사건의 경우도 그랬다.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한 장애인이 벌금 대신 사회봉사를 하는 ‘대체형벌’을 신청하자 법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기각한 사건이다.

“기각 사유가 없었어요. 한마디로 ‘장애인이 무슨 사회봉사를 하겠다는 거냐’라는 뜻이었죠. 만약 벌금을 내지 않아 검거되면 유치장 노역을 선고받는데 그건 또 가능하다는 거예요.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죠.”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된 일을 법원이 다시 받아들이게 하는 데엔 많은 시간과 설명이 필요했다. 김 변호사는 4개월간 의뢰인의 평소 봉사 경험과 노력을 소명하고,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봉사활동을 충분히 수행하는 사례를 입증했다. 결국 항고가 받아들여졌다.

그는 “변호사가 돼서 맡은 첫 사건이 나를 장애인을 위한 법률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발생한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이었다. 언론에 ‘천사 목사’로 수차례 소개됐던 한 남성이 장애인 21명을 호적에 올려 정부 지원금을 타내고, 폭행과 학대로 자녀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다.

“사건을 맡았을 때 대부분의 장애인은 사망하고 4명만 생존했습니다. 그런데 피의자가 징역 3년 6개월을 받았어요. 피해 진술을 구체적으로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요.”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김 변호사의 목소리가 커지고 말은 빨라졌다. 그는 “사건을 접했을 당시의 경험과 기억을 원동력 삼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8년간 김 변호사는 장애인 인권 활동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2014년에는 장애인 노동자의 의족 파손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1·2심에서 모두 패소한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은 것이다. 2016년엔 한 눈 시각장애인도 1종 운전면허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3월에는 ‘곽정숙 인권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곽정숙 인권상은 척수장애인으로 평생 장애인 인권 활동을 펼친 고 곽정숙(1960~2016) 전 의원의 뜻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인들이 처한 인권 현실을 영화 속 장면과 연결짓는 방식으로 풀어쓴 책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를 지난 2월 출간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소송만으로는 한계 분명…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김예원 변호사도 장애인이다.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한쪽 눈을 잃어 ‘6급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겸자분만(태아의 머리를 집게로 집어 잡아당기는 분만법) 도중 집게로 눈을 찍은 것이다. 장애를 입은 이유를 중학생이 돼서야 알게 됐는데, 시효가 지나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때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도울 생각에 법조인을 꿈꿨고, 운명처럼 장애 인권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권법센터는 재단이 아니기 때문에 후원받을 수 없다. 수임료도 받지 않는다. 활동비는 공익변호사 활동 지원을 위한 공익법률기금의 지원과 외부 강연비, 연구 용역비 등으로 충당한다. 돈을 벌어서 일하는 데 쓰는 구조다.

“수임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민사보다는 형사 사건에 집중하는데, 가끔 민사를 진행할 때가 있어요. 무연고자인데 10년 넘게 노동 착취를 당한 지적장애인 사례였어요. 제가 소송을 맡아 형사는 이겼는데, 아무도 이 사람을 위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해주지 않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법무법인 태평양과 함께 피해자를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부당 행위 대부분이 인용돼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김예원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공익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적을 옮겨 변호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에 ‘염전 노예’ 사건 등 노동 착취 사건이 지방에서 많이 터졌어요. 아무래도 서울시 조직에 묶여 있다 보니 이런 사건을 맡을 수 없어서 마음의 빚 같은 게 남았어요. 운신의 폭을 넓히려면 조직을 떠나 활동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2017년 장애인권법센터를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장애인 인권 현실을 영화와 연결지은 책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를 펴내기도 했다. 법률로 다투는 데는 한계가 있고, 사회적 인식 전환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거창하게 판결이나 결정을 받아내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인식 전환은 사소한 행동을 시작하는 데서 출발해요. 개개인의 작은 생각과 행동이 모이면 ‘공익’이라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