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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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1 09:57 조회5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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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법센터 대표 변호사“수임료를 안 받는 법률사무소가 대체 뭔가요?”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이 듣는 말이다. “비영리 공익전담변호사로 일 한지도 십년이 넘었지만 ‘수임료 약정’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사실 ‘수임료’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기도 하다. 장애인권법센터는 법률사무소로서 장애가 심해서,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많아서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거나, 가난과 괴롭힘 속에서 삶을 견뎌온 피해자들만 지원하기 위해 수임료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물론 활동비는 벌어야 하기 때문에 강연이나 연구용역을 통해 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장애인을 지원하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은 거의 한 번도 없었고 어찌어찌 공익활동을 직업으로 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내게 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공익활동을 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태어나면서 의료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고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오다가 중학생이 돼서야 그 사고의 전말을 처음 듣게 되었는데, 정작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병원으로부터 얼마나 보상을 받았냐’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시효가 지나 보상은커녕 아무 문제제기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막연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의 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전부이다.

오히려 공익활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들과 만든 경험이었다. 신우회와 인권법학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동기들과 변호사 실무 수습을 열악한 공익 단체들로 일부러 나가보기로 하고 실무수습을 마친 후 동기들과 그 수습기간에 보았던 인권 현장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생각보다 절망적이라는 것을 그즈음에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감하게 된 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공익적인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위한 모금을 했고, 지금의 ‘공익법률기금’을 만들어 공익변호사를 지원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감사하게도 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변호사로 직접 공익사건을 수행하게 되었고 서울시 장애인 인권센터에 가서는 인권 침해 상황을 직접 신고 받고 출동하여 조사하는 일도 두루 경험하였다. 서울이라는 한정된 지역을 넘어 장애인뿐만 아닌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지원하고 싶어 비영리 1인 법률 사무소인 장애인권법센터를 열게 되었다. 고정적으로 나오는 월급을 뒤로하고 일절 사건 수임료를 받지 않는 비영리 공익활동 전담 법률사무소를 연다는 것에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고 제도개선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센터를 열고 주로 개입한 사건들은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장애 아동 학대사건, 발달장애인에 대한 노동착취 사건 등 주로 학대에 관한 사건들이었다. 점차 활동 주제를 넓혀가면서 혐오와 차별, 소수성 자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사건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인권뿐 아니라 아동인권에 관한 일도 많아졌고 피해자 지원제도 연구, 정보인권, 환경권 등 분야도 넓어져갔다. 각 사안마다 의뢰인의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에 공익소송뿐 아니라 법안을 만들어 의원입법으로 법을 발의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는 등 활동 방식도 다양해졌다.

혼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오만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가급적 함께 일하는 편이다. 공익소송이나 제도개선 활동을 긴 호흡으로 해야 할 때는 같은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백여 명의 공익변호사들과 수시로 소통한다. 항상 신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편견이나 오해를 겪다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주류 중심의 사회에서 무관심의 영역에 있는 소수자들의 삶이 원치 않는 차별, 악의 없는 차별에 놓이지 않으려면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오지랖’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애인법연구회 일원으로 함께 쓴 책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뿐 아니라, 영화로 본 인권이야기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장애인권 동화 ‘이상하지도 아프지도 않은 아이’ 그리고 최근에는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를 책으로 출간하였다.

공익활동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좋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마음 바탕이 훌륭한 분도 물론 계시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며 뭔가를 배워가는 것이 직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변호사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인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공익활동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 안의 사회적 소수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으로 향해가는 작은 걸음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변호사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