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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앉은뱅이 밀' 최선인가요?" 편지에 농진청 "새 이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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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1 10:12 조회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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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아동 상처" 글에 농진청 "바로 검토"
"'결정장애' 같은 '장애 대상화' 표현 여전히 많아"

'앉은뱅이 밀'은 기원전 300년부터 한반도에서 자란 토종 밀입니다. 다 자라도 50~80cm로 키가 비교적 작아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앉은뱅이 밀 쿠키', '앉은뱅이 밀 라면'처럼 이 이름이 붙은 가공식품도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앉은뱅이'는 '하반신 장애인 중에서 앉기는 하여도 서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키가 작은 대상을 비유하곤 하는 이 단어에 장애인을 낮춰 보는 관점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키가 작은 우리밀. 〈사진=국립식량과학원〉키가 작은 우리밀. 〈사진=국립식량과학원〉
장애인의 날이기도 한 오늘(20일), 농촌진흥청이 '앉은뱅이 밀'이라는 표현을 더는 사용하지 않고, 새 이름으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장애인권법센터 대표인 김예원 변호사가 어제(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앉은뱅이 밀' 품종 이름 변경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농촌진흥청에 보낸 편지를 공개하면서입니다.

김 변호사는 이 글에서 "지인 중에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있다. 그분 아이 척추가 기형이라 휠체어를 이용하고, 자주 아프다. 그래서 아이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 밀 제품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 아이는 지체 장애가 있는데 다른 사람보다 키가 훨씬 적게 자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앉은뱅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가 너무 싫어하고 울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토종밀 제품을 자주 먹는 아이가, 그 제품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김 변호사는 "'앉은뱅이 밀'이라는 이름을 다른 것으로 고려해 주시면 안 될까요? 더 귀엽고 더 건강하고 더 사랑스러운 단어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아서요"라며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가 19일 농촌진흥청에 보낸 편지. 〈사진=김예원 변호사 페이스북 갈무리〉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가 19일 농촌진흥청에 보낸 편지. 〈사진=김예원 변호사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자 하루 만에 농촌진흥청이 더는 '앉은뱅이 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새 이름을 정하기 위해 농민 등 관계자와 시민의 의견을 구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일단 누리집에서 더는 '앉은뱅이 밀'로 내용이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 외에도 '결정 장애, 안면인식장애'와 같이 장애를 대상화하는 단어가 너무 쉽게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 입장에서 이런 단어를 접하면 자신을 '장애가 있어 무언가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기 쉬워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써온 말인데 이런 것까지 불편해하냐'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앉은뱅이 밀'이라는 단어가 쓰여온 지난 수십 년 간의 역사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뜻입니다.

김 변호사는 그래도 "조금만 조심하면 바꿀 수 있는 표현"이라면 바꿀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시대가 변해 단어의 속뜻까지 들여다보는 만큼 유난 떠는 게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어떤 단어를 불편해하는지 소통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밀'을 대체할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앉은키 밀'이라고 합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연구원 밀연구팀 박태일 팀장은 "오랫동안 쓰이던 단어인 만큼 원래 말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단어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JTBC(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