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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애ㆍ아동학대 사건 땐 피해자 목소리 직접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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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20 03:56 조회1,3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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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외면하는 수사기관] “장애ㆍ아동학대 사건 땐 피해자 목소리 직접 들어야”

목포 아동학대사건 맡은 김예원 변호사

#1

경찰ㆍ아동기관 중 한 곳 출동 체제

서로 책임 회피, 직무 유기 가능성

현장선 아동 대신 부모 말만 들어

신고-출동시스템에 근본적 오류

#2

“별일 없다고요? 네” 형식적 대응

진술 어려운 상황ㆍ사람이라면

의사 등 객관적 진술자 찾아야

일본처럼 고소고발 엄격히 할 필요도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는 "형식적인 방문이나 늑장 출동으로 귀결되는 학대사건 신고 체계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지난해 10월 전남 목포시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은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무성의한 대응’이 피해를 키운 대표적 사건이다.

A(당시 5세)군은 친모 최모(35ㆍ구속기소)씨의 동거남 이모(27ㆍ구속기소)씨에게 수차례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거듭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의료진이 보기에 ‘아이가 집 안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는 최씨의 설명은 영 석연치 않았다. 팔은 폭행이라도 당한 듯 뒤로 꺾여 있었고, 머리는 피투성이에, 전신 곳곳에 다발성 골절이 있었다. 수상하게 여긴 의사가 신고의무에 따라 학대의심 신고를 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한 신고시스템은 정작 현장 조사를 맡은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의 무심한 손에서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음날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들은 A군을 찾았지만 ‘집에서 넘어진 게 맞고, 아이가 피곤해하니 돌아가라’는 최씨의 말만 믿고 ‘학대정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의사의 첫 신고를 받은 광주동부경찰서는 수사요청서와 문자 등으로 수차례 조사를 종용했지만 관할인 목포서는 전문기관의 말만 믿고 A군을 만나지 않았다. 이들의 방관은 이씨에게 폭행할 권리를 보장해 준 셈이었다. 최씨의 방치 아래 A군은 한쪽 눈을 실명하고, 고환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해를 비롯해 양팔과 다리 골절 등의 중상을 입고 다시 병원으로 실려왔다.

A군의 변호인단은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뷰를 자제했지만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신고와 출동 시스템의 근본적 오류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변호를 맡은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가 인터뷰에 응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사건이나 인권침해 사건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인데, 현장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무성의하고 기계적인 출동과 대응, 책임 미루기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건 내용도 경과도 참담하다.

 

“적잖은 조사과정이 그렇듯, (첫 신고 접수 후) 입원실에 찾아온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이 사실상 가해자들 이야기만 듣고 돌아갔다. 이런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자이고 피해자인) 아이가, 장애인이, 여성이 자기 스스로 내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분리가 기본이다. 아이는 병상에 누워있고, 엄마가 옆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삼촌이 나 때렸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엄마가 ‘지금 아이 피곤하니까 그만 질문하세요’라고 한 뒤 조사가 끝나 버린 것이다.”

-명색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인데….

 

“전문기관이라도 보건복지부가 각 지역의 사단법인 등에 위탁해 운영하는 식이어서 지역마다 다르다.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도 없다. 줄곧 문제가 지적된 지역 기관이 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단순히 직원의 태만이나 경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개선할 안전장치가 너무 없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지도 않았다.

 

“가장 큰 문제가 거기에 있다. 현행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에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 혹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직원이나 경찰 중 어느 한쪽만 현장에 출동해도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판여론이 커져 당시 수사하지 않은 경찰이 징계를 받긴 했지만, 법 위반은 아닌 셈이다. 서로 책임 회피가 가능하고 한쪽이 출동하면 다른 쪽은 확인도 안 하는 식이다. 법 자체가 직무유기를 묻기 어렵게 돼 있다.”

-한 쪽이라도 출동하면 조사는 잘 되고 있나.

 

“학대나 폭력 사건 신고를 많이 해 봤지만 만족스러운 대응이 이뤄진 적은 거의 없었다. 전문기관은 일단 묵묵부답이다. 1시간 동안 아이 비명소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문이 부서질듯한 소동이 일어나 다 녹음을 해서 전송까지 해 줬는데도 출동이 없길래 전화해서 따졌더니 ‘저희도 일이 많아 힘들다, 급하면 112로 신고를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직접 출동을 못할 것 같으면 기관에서 경찰에 신고를 해야 맞지 않나. 전문기관은 1~3일 후에 아이의 학교로 따로 찾아간다거나 하는 대응을 주로 하더라. 급해서 112에 다시 신고를 하면 찾아와 ‘똑똑똑, 무슨 일 있으세요? 별 일 없다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하는 지극히 형식적인 대응이 여기저기서 반복됐다. 매번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그 대응 방식에 너무 화가 나 녹음까지 해봤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은 지극히 기본 매뉴얼 아닌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이 안 되고 있다. 아동, 장애인, 여성 등 피해자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건들이 대개 그렇다. 반드시 당사자의 목소리를 확인해야 하고, 만약 진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여러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증장애인이라거나, 시설의 권력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경우라면 그냥 돌아가 버릴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대신할 객관적인 진술자를 찾아야 한다. 하다 못해 신고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목포 아동학대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조사 담당자들이 학대의심 신고를 한 의사를 만났어야 했다. 왜 신고를 했는지, 어떤 측면에서 아동학대로 의심이 되는지, 경찰이나 전문기관 누구 한쪽이 의사에게 ‘팔은 뒤로 꺾이고, 온몸 골절에, 피투성이가 된 점으로 볼 때 폭행을 당한 흔적’이라는 의견만 들었어도 학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긴 어려웠다. 그때에만 나섰어도 아이가 한쪽 눈을 잃은 채 평생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

-좀더 적극 수사하도록 독려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기관이든 경찰이든 현장에서 열심히 하고 고생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이 밀려드니 일단 관할을 따지며 넘기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의 태도도 문제겠지만 제도적으로 일본처럼 고소고발을 엄격하게 하는 식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고소고발 시 주요 증거를 가져오게 하는 식으로 업무를 줄이는 보완책도 있을 수 있다. 지금처럼 사건의 입구와 출구를 모두 담당 경찰이 감당하지 말고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