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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전문] 서지현 검사 “피해자 입 닫게 하는 현실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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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15 12:36 조회1,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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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전문] 서지현 검사 “피해자 입 닫게 하는 현실 참을 수 없었다”

제1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지도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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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1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에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젊은지도자상을 대리수상한 김예원 변호사(가운데)와 법무법인 문무 조순열 대표변호사(오른쪽)가 시상식 후 강정훈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왼쪽)과 자리를 함께 했다.   ©한국YWCA연합회 제공

 

“‘미투’ 운동은 공격적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입니다. 저는 누구 한 사람을 공격하고 폭로하거나 개인적인 한풀이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바로 서야 할 검찰을, 우리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YWCA연합회(회장 한영수)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연 제1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에서 젊은지도자상을 받은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이 같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서 검사는 검찰 내 성폭력 실태를 고발해 한국사회의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을 확산시키고, 여성인권 향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YWCA연합회 측은 “서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은 권력과 결탁한 성폭력 앞에 침묵을 강요받거나 숨죽여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에게 큰 힘을 줬다. 또 성범죄가 남성 개인의 일탈이 아닌 가부장적 권력구조와 성차별적 위계문화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의 중요성을 일깨웠다”고 설명했다.

서 검사는 수상소감을 통해 “검찰 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강자들의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음해하면서 치욕과 공포를 안겨주어 스스로 입을 닫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며 “힘겹게 쌓아왔던 제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성폭력은 범죄라고, 성범죄는 가해자의 잘못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수많은 공감의 목소리와 검찰이 정의의 수호기관으로 바로서야 한다는 것에 뜻을 함께하는 응원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봤다”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해자들에게 아주 작은 빛이라도 됐으면 하는 소망으로 힘을 내 서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 검사의 수상소감 전문이다.

힘겹고 두렵지만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분에 넘치는 뜻 깊은 상을 받게 되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직접 참석하여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일상의 차 한잔에 소소한 행복을 찾고,

가금 남편과 투닥대기도 하고,

아이 간식과 공부를 걱정하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다가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어 세상 앞에 섰습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검찰 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강자들의 성폭력,

그럼에도 가해자를 처벌하고 징계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음해하고 괴롭히면서,

피해자에게 치욕과 공포를 안겨주어 스스로 입을 닫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만행을 가능하게 하는 검찰 내부의 부패와 인사 관행을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십 수 년 동안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으면서

힘겹게 또 힘겹게 쌓아왔던 제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범죄라고,

그것은 가해자의 잘못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검찰은 정의의 수호 기관으로 바로서야 한다고….

 

저는 남성 전체를 적으로 만들고자 한 것도, 검찰 전체를 공격하고자 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는 대다수의 건전한 상식을 갖고 있는 남성들이 힘겹지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검찰에는 대다수의 선량하고 정의로운 검사들이 밤새워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MeToo 운동은 ‘공격적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 한 사람을 공격하고 폭로하거나 개인적인 한풀이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바로 서야 할 검찰을, 우리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날 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수십 년을 보아온 그대로, 마치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참고 또 참던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가해자가, 조직이, 사회가 부인과 비난, 은폐와 보복을 시작합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각오했던 일이지만, 힘겹고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수많은 공감의 목소리 속에서,

검찰이 바로서야 한다는 것에 뜻을 함께 하는 연대의 응원 속에서,

어쩌면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그러하듯, 모든 약자들의 외침이 그러하듯

어느 한순간에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화되고 개혁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힘겹게 떨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아주 작은 빛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공감해주시는 목소리에 큰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받아,

힘을 내어 서 있습니다.

 

저의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일로

이렇게 큰 상을 주심에 다시 한 번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