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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자문]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도 법정에 직접 나와, 진술 시시비비 가려야" 헌재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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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3-14 10:13 조회8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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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도 법정에 직접 나와, 진술 시시비비 가려야" 헌재의 결정 기사 관련이미지
성폭력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법정에 나가지 않아도 진술 과정을 녹화해 증거로 채택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형사 소송의 핵심은 '증거'다. 피고인의 범죄 여부를 다투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 등의 진술 역시 중요한 증거가 된다. 다만, 원칙적으론 재판정에 나와 법관이 보는 앞에서 말한 것만 증거로 인정된다(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이같은 원칙에도 불구하고 일부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미성년 피해자가 진술을 하면, 이를 영상물로 녹화해 남길 수 있도록 했다(제30조 제1항). 그리고 해당 조사 과정에 함께 했던 신뢰 관계인 등이 재판에 출석해 진술 녹화 내용이 사실임을 진술하면, 증거로 채택되도록 해왔다(제30조 제6항).

이는 성폭력 피해 경험을 반복 진술하며 겪게 될 2차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앞으론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라고 해도, 법정에 직접 나가서 한 말만 증거로 인정받게 됐다.

지난 23일,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위헌, 3명이 합헌 의견을 내면서다. 이로써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진술 녹화와 증거 채택을 인정해왔던 성폭력처벌법 일부 조항은 위헌으로 효력을 잃게 됐다.

재판관 6명 "진술에 대한 반대 신문권 줘야"⋯피고인 방어권 강조
위헌 판단을 한 헌법재판관 6명은 "피고인이 반대 신문의 기회를 전혀 부여받지 못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고 봤다. 즉 피해자 진술의 진위를 가려야 하는데, 이를 녹화한 영상만 제출해선 피고인이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또한, 꼭 진술 녹화 방식이 아니어도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있다고 봤다.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면하지 않도록 피고인을 퇴정 시키고 중계 장치 등을 이용해 증언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헌재 결정에 일선 변호사들은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명재의 이재희 변호사는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을 다른 수단이 존재하는데도,
전문법칙(傳聞法則)
전문법칙(傳聞法則)
법정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은 진술 등은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원칙(제310조의2).
의 예외를 만들고 반대 신문권을 행사조차 못하게 하는 건 과도하다"며 "이는 피고인 반대 신문권의 중대한 제한"이라고 말했다. 다수 헌법재판관 입장과 같았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 역시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수밖에 없는 만큼, 시시비비를 가리려면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성년 영상진술의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은 원천봉쇄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의 위헌 결정이 맞는다고 봤다.

법률 자문

'법무법인 명재'의 이재희 변호사,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 /로톡DB'법무법인 명재'의 이재희 변호사,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 /로톡DB

재판관 3명 "법정 진술, 강한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 줄 수도"
반면, 위헌 결정에 반대한 헌법재판관 3명(이선애·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은 "성폭력범죄는 범행 당시 특별한 물적 증거가 남지 않거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중요한 사건이 다수"라고 반박했다.

특히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엔 피해자의 법정 증언을 두고 신빙성에 대한 격렬한 탄핵이 이뤄지게 된다"면서 "피해자가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복기하고 격렬한 탄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범죄 행위만큼 강한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을 줄 수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 /로톡뉴스 DB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 /로톡뉴스 DB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도 위 재판관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이번 위헌 결정은 많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권리를 구제받는데 난관으로 작용할 거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확실한 물증이 없는 형사 사건에선, 피해자가 증인으로 소환되는 것이 거의 유일하게 실체적 진실을 찾는 방법"이라며 "(증언으로) 피해자가 모든 범죄 내용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헌재는 피해를 줄일 다른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결국 피해자를 수차례 법정으로 불러 진술하게 하는 2차 피해를 막기 어려울 거라고 김 변호사는 본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나온 뒤, 한국여성변호사회를 비롯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인권 단체들은 24일 일제히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해당 단체들은 "한 번의 진술조차 쉽지 않은 아동·성폭력 사건에 대한 몰이해 속에 내려진 위헌 결정"이라며 "가해자 방어권을 이유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어야 할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https://lawtalknews.co.kr/article/Z18YAH4FO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