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몰린 지적장애인 강압 의한 진술에 무방비

박순봉 기자

검찰 가서야 무혐의 결론

‘경찰 조사 보호자 동석’ 등 진술 조력 규정 마련 시급

지난 7월30일 오전 출근 중이던 지적장애 3급 ㄱ씨(39)가 지하철 1호선 독산역사 내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지하철 안에서 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였다. 서울지방철도경찰대 광역철도수사과 경찰들이 ㄱ씨를 데려가 조사했다.

ㄱ씨의 어머니가 연락을 받고 왔을 때 ㄱ씨는 이미 잘못을 시인하는 자필 진술서를 써둔 상태였다. 평소보다 글씨가 깨끗하고 문장이 잘 정리돼 있었다. ㄱ씨의 어머니는 “누군가 불러줬거나 대필을 한 것 같다”고 항변했다. 경찰은 “ㄱ씨가 스스로 쓴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ㄱ씨가 지적장애인임을 고려해 모르는 사람이 화내거나 꾸중하면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라고 가르쳐왔다. 조사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 ㄱ씨는 경찰의 질문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경찰이 “성적으로 흥분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답했다. ㄱ씨의 어머니가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하자 경찰은 “진술이 왜곡된다. 내보내겠다”고 했다. ㄱ씨는 기소 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됐지만 지난 9월19일 검찰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다”고 결론 내렸다.

ㄱ씨의 어머니는 “다행히 검찰에서 억울함이 풀렸지만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억울하게 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며 “아들이 나이가 많은데도 반말하고 하대하는 경찰의 태도를 보면서 슬펐다”고 말했다.

지적장애인들은 가해자로 조사를 받을 때 유도심문이나 강압수사를 당할 가능성이 크지만 보완책은 미비하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경찰 3명이 절도사건 공범 혐의를 받던 지적장애 2급 김모씨(19)를 조사하며 욕설, 폭행, 심야조사, 보호자 동석 거부 등 강압수사를 했다며 이들에 대해 경고·주의 조치하라고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해 12월 김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강원 팀장은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김씨 아버지를 내보낸 뒤 폭행을 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견됐다”며 “지적장애인들이 수사 과정이나 재판에서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거나 강압수사를 당해 억울하게 누명 쓰는 일들이 계속 문제가 돼 왔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성폭행 피해자만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적·발달장애인들이 가해자로 지목되면 수사기관에서 스스로 억울함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부모 등 신뢰관계인이 동석할 수 있지만 진술왜곡 등을 이유로 수사기관이 동석을 제한할 수 있다.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김예원 상임변호사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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