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빠르지않아 대응 늦고인지 빠르지않아 대응 늦고
피해진술 인정받기 어려워피해진술 인정받기 어려워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
`도가니법` 후 형량 늘었지만
입증요건 강화돼 무혐의 ↑
기소율 30%대까지 떨어져
피해진술 인정받기 어려워피해진술 인정받기 어려워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
`도가니법` 후 형량 늘었지만
입증요건 강화돼 무혐의 ↑
기소율 30%대까지 떨어져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최근 5년 사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강제추행 신고 건수는 5년 전에 비해 무려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성범죄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지만 기소율은 매년 떨어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매일경제가 대검찰청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결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장애인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 위반 신고 건수는 2013년 946건에서 지난해 1080건으로 많아졌다. 특히 5년 사이 강제추행 신고 건수가 치솟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 282건이었던 장애인 강제추행 사건은 2014년 413건, 2016년 478건으로 늘어나더니 지난해 526건에 달했다.
하지만 기소율은 점차 떨어지고 무혐의 처분만 늘어나고 있다. 2013년 장애인 강제추행 사건의 기소율은 43%였으나 지난해에는 34.7%로 줄었다. 같은 기간 무혐의 처분을 받은 비율은 17.8%에서 25.2%로 올랐다. 강간 신고는 더 인정받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45.6%에 달하던 장애인 강간 사건 기소율은 2017년 31.8%로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무혐의 처분 비율은 29.7%에서 41.1%로 급증했다.
특히 지적장애인이 성범죄자의 손쉬운 타깃이 되고 있다는 염려가 많다. 일례로 최근 강원에선 60~80대 노인들이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5년간 성폭행한 게 뒤늦게 밝혀졌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지적장애인은 조금만 지켜봐도 금방 파악할 수 있어 가해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며 "인지가 빠르지 않아 대응이 느리니 길거리 기습 추행도 무척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지적장애인은 피해 진술을 제대로 못하거나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피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경증 지적장애인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사회적 고립이 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지적장애인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많이 당하고 성인이 돼서도 직장을 갖기 힘들다"며 "그나마 관계를 맺는 건 복지관 사람들 정도인데 이마저도 부모가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경우에만 허락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팀장 역시 "오랜 기간 고립돼 왔던 지적장애인들은 채팅 앱 속 상대를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로 의존한다"며 "이로 인해 굉장히 착취적인 관계 속에서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렵게 신고를 해도 가해자가 채팅 내역을 보이며 서로 합의하에 했다거나 장애가 있는지 몰랐다고 발뺌하면 처벌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가 심각한 수준인데 이를 예방하거나 처벌할 사회 제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범죄 구성 요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변호사는 "도가니법이 생긴 후 형량이 가중되자 재판부에선 그만큼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며 "그러나 정신적 장애인이 피해자인 경우 신체적 장애인과 달리 항거 불능 상태였는지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진술 자체를 받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사실을 고려해 지적장애 여성에게 맞는 특화된 범죄 구성 요건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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