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통지도 못 받는 국선변호사읽음

김원진 기자

아동·성범죄 피해자 지원…검찰, 사건 경과 안 알려 낭패

“10건 중 9건 제때 안 와” 직접 검색까지 제도 허점 여전

“차라리 별도 기관서 관리”…검찰 “자동 통지시스템 검토”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최근 장애인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피의자 구속을 확인하고 기소 소식을 기다렸는데, 검찰이 피해자 측에 통지도 하지 않고 기소해 공판이 이미 한 차례 진행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예전에 장애인 강제추행사건의 변호를 맡았을 땐 피의자가 합의하자고 연락이 와서 그제야 기소된 사실을 안 적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2012년 아동범죄·성범죄 피해자나 수사기관 요청에 따라 국선변호사를 지정해 지원하는 ‘아동범죄·성범죄 피해자(이하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도입해 운영한다. 법무부령인 ‘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에 관한 규칙’엔 경찰은 송치, 검찰은 기소했을 때 국선변호사에게 통지해야 한다. 김 변호사 사례처럼 국선변호사들에게 제때 사건 경과를 통지하지 않는 일이 잦다. 통지 의무 규정 위반이다.

이런 통지 누락은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대부분이 겪는 일이라고 한다. 경기 안산시에서 활동하는 조아라 변호사도 공익활동 일환으로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도 맡고 있다. 조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맡으면 10건 중 9건은 제대로 사건 경과가 통지되지 않는다”며 “간혹 직접 법원 사건검색에서 재판 일정을 검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건 경과 통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범죄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잃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통지 누락으로) 피해자에게 욕을 먹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일종의 공익활동으로 국선변호사를 맡는 것인데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국선변호사 일을 하지 않는다.

통지 누락 때문에 피해자들이 사건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김 변호사는 “한국 형사소송은 범죄 피해자를 ‘증거’ 정도로 간주하는 것 같다”고 했다. 피해자에게는 공소장 정도만 주고, 재판 자료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국선변호사가 재판을 쫓아다니며 피의자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등을 챙겨야 하는데, 사건 경과가 통지되지 않으면 이마저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은 “검찰과 법무부의 무성의가 문제”라고 했다. 검경이 사용하는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와 연동해 사건 경과마다 e메일·문자로 통지하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검찰이 아닌 별도 기관이나 협회에서 국선변호사를 관리하며 사건 통지를 맡는 방안도 나온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경험이 있는 서치원 변호사는 “검찰은 항상 범죄 피해자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며 “오히려 제3의 기관에 예산을 줘 범죄피해자와 국선변호사 관련 행정처리를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일선 검찰청은 대검찰청 지침에 따라 피해자의 변호사에게 처분결과, 재판결과, 구금에 관한 사실을 통지하고 있다”며 “사건 경과를 변호사들에게 자동으로 통지하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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