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

[통큰기사-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 양육책임 소홀한 아동 유기·방임 사건 들여다 보니

'생계 고충 집 비우는' 한부모, '쓰레기 집에 사는' 아이들… '마음의 상처'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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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만 없는 게 아니다. 아이를 위한 도시도 없다. 어둠 속에 방치된 아이는 드러나지 않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양육의 기본적인 책임은 1차로 보호자에게 있다.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양육과 치료·교육을 소홀히 하면 형법,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벌금을 내거나 징역을 살아야 한다.

1차적인 책임을 보호자에게 지우면서도 대한민국 법은 보호자에게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지우진 않는다. 아동복지법의 모법(母法)으로 1961년 12월 제정된 '아동복리법(현 아동복지법)'은 구청장·시장·군수에게 보호해야 할 아동이나 임산부를 발견하면 광역시·도 지자체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60년 전부터 이 법은 시·읍·면엔 아동위원을 두고 관할구역 내 아동의 생활상태나 가정환경을 상세히 파악해 필요한 원조와 지도를 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녀 양육 오가작통(五家作統)제'로 작동했다.

아동을 보호하는 법은 광범위하고 촘촘하다. 하지만 아동 양육의 기본적인 책임을 다할 수 없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보호자와 그 가정을 보호하는 체계는 헐겁다.

경인일보는 2019년부터 2021년 12월 최근까지 수원지법과 의정부지법, 인천지법 본·지원에서 진행한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 가운데 형이 확정된 형사재판 판결문 60건을 입수해 전수 분석했다. 이 중 보호자로서 아동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와 양육을 소홀히 한 유기·방임 사범 사건 7건을 추렸다.

# 집에 버려진 아이들


홀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 자녀를 양육하면서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인천지법 2021고단2206). 친아버지가 자주 찾아오지 않아 미웠다(의정부지법 2021노62).

이혼 후 홀로 7살 난 아들을 양육하며 생계를 유지했다(인천지법 부천지원 2020고단3679). 방 청소를 안 한다(수원지법 성남지원 2020고단2177).

남편이 생활비를 안 줘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잘 때 일 하러 나갔다(수원지법 2020고단1549). 전 남편이 산업재해 사고를 당해 입원치료 중이라 혼자 자녀들을 양육하기 어려웠다(의정부지법 2019고단4795).

남편과 이혼한 뒤 친정부모의 도움으로 자녀들을 어렵게 양육하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빠졌다(수원지법 2018고단6795). 판결문 7건에 적힌 보호자들의 의무 방기 사유다.

집에 버려진 아이들의 목소리는 판결문에 담겨 있지 않다. 보호자의 방임으로 아이들이 겪은 고통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을 집에 두고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보호자의 변(辯)은 피고인 자격으로 법정에 선 보호자들의 최후진술을 축약해 문장으로 남았다.

'홀로 ADHD자녀 양육 정신적·경제적 어려움'
'남편 생활비 주지않아'… '친아빠 잘 안 찾아와'
아이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가야했던 보호자들의 변


숱한 밤, 아이들을 재워두고 문밖을 나서야만 했던 아동복지법 위반 사범들에게 대한민국과 경기도·인천시, 지역공동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낳으래서 낳았더니 영유아 공보육 지원은 아파트 청약당첨만큼이나 어려웠고, 법률혼 관계가 깨지지 않으면 한부모 가정에 주어지는 현금성 양육 복지 지원에서도 제외됐다.

오산시에서 8살 난 아들,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살았던 진달래(가명)씨의 사연을 보자. 달래씨는 남매의 112 신고로 아동복지법 위반 사범 낙인이 찍혔다. 남편은 따로 나가 살면서 홀로 남매를 키우는 달래씨에게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았다. 자녀 양육과 생계 모두 달래씨 몫이었다. 아이들이 잠드는 밤 8~10시 사이에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러 나가 이르면 이튿날 오전 5시, 늦으면 11시께 귀가했다.

판결문에 드러난 달래씨의 '외출 일지'를 보면 2019년 6월부터 9월까지 여덟 차례 어린 남매를 집에 두고 거리로 나섰다. 달래씨는 법정에서 "집을 비우게 되면 음식을 미리 챙겨놓고 아이들의 기본적인 보호와 양육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아동복지법이 금지하는 방임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이 잠드는 밤마다 외출한 노래방 도우미
집 비우게 되면 음식 준비 항변했지만 '유죄'


당시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1단독 최혜승 판사는 출동 당시 집안 상황과 아동복지법 위반 피해자인 달래씨의 자녀들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달래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40시간 동안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도 수강해야 한다. 최 판사는 "아이들이 받은 불안감과 상처가 크다. 다만 초범인 점,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보살피겠다고 다짐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조아라(가명)씨는 부천시의 한 모텔에서 7살 아들과 단둘이 장기투숙했다. 2018년 4월부터 1년여 동안 아들을 방 안에 홀로 두고 오랫동안 집을 비우거나 쓰레기를 쌓아두고 치우지 않아 악취가 나는 환경에서 키운 죄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처벌은 피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2단독 서호원 판사는 이혼 후 홀로 양육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점, 개선 가능성 등을 참작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 내버려둬도 되는 아이는 없다


안타깝다. 법관이 작성한 판결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박민 판사는 수원시 영통구의 8살 남자 어린이와 7살 여자 어린이의 어머니 박지혜(가명)씨의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사건 판결문에 안타깝다는 감정을 나타내는 수식어구를 썼다.

박씨는 저장강박증 '호더스 증후군(hoarders syndrom)'을 앓고 있었다. 호더스 증후군은 온갖 물건과 심지어 쓰레기까지 집 안에 쌓아두고 이 물건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안락함을 느끼는 질환이다. 행정복지센터의 담당 공무원들이 박씨와 남매의 주거지에서 들어낸 생활 폐기물 쓰레기는 족히 1.5t 포터 트럭 4대 분량으로 5t에 달했다.

남매 중 둘째인 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결한 생활 탓에 유치에서 영구치로 이를 가는 시기에 충치가 생겼고, 두 눈이 정렬되지 않는 사시 질환이 있었다.

저장강박증 앓는 엄마 쓰레기까지 집안에 쌓아
불결한 생활 탓에 충치가 생기고 사시 질환까지


남편과 이혼하고 친정 부모의 도움으로 겨우 남매를 양육하면서도 매월 급여가 나오는 날은 집 근처 중국음식점에 자장면 한 그릇을 배달 주문해 먹였다. 퉁퉁 불은 자장면을 먹이고 싶지 않아 음식점 주인에게 신속배달을 간곡히 요청하는 어머니였다.

법원은 지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120시간 수강과 3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하면서도 가여운 어머니의 사정을 이해했다. 징역 6월은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최하한이다.

박 판사는 "피고인이 자녀들을 불결한 주거 환경에 그대로 방치하고, 각종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도 받게 하지 않아 친권자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렸으므로 죄가 가볍지 않다"고 짚었다.

다만 "전 남편과 이혼하고 어렵게 자녀를 양육하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빠져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한 차례 다른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 이외에는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 피고인에게 다소나마 유리하거나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중학생 첫째·둘째 아들과 초등생 막내아들을 두고 몰래 이사 간 한부모 가정 어머니는 '독박 양육이 어려웠으리라'는 법원의 따뜻한 판결문을 받아들었다.

의정부지법 형사6단독 이인경 판사는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기소된 정이슬(가명)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40시간, 3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 "전 남편이 4년 전 산업재해사고를 당하고 입원 치료를 받느라 피고인이 혼자 자녀 3명을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이 넉넉히 짐작된다"며 "반복된 방임으로 피해 아동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아동 양육의 책임을 저버린 보호자 피고인들을 꾸짖을 뿐 '아이 낳아 잘 기르라'는 정부의 출산 독려 정책을 비판하진 않는다. 대신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부는 우리 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화두를 판결을 통해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사법부는 판결 통해 사회 함께 양육 화두 던져
최소한의 생활 수준·돌봄 공백 개선은 과제로


학대 사망 사건은 전체 아동학대 사건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99%는 양상이 다 달라 접근하기 어려운 게 양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동 피해 사건이다. 보여주기식 예방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 수준과 돌봄의 공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아동학대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의 일관된 주장이다.

김예원 변호사는 "아동 사건은 지원 체계가 대단히 분절적이고 쪼개져 있다. 개개의 지원 체계를 들여다보면 중복된 주체들이 중복된 권한을 가지고 서로에게 떠밀기를 할 수 있는 구조"라며 "제도가 한 사람의 인성, 자기 결정까지 통제할 순 없지만, 그 당사자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의 정책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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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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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배·배재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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