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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인이 만나는 법] ①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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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12 11:24 조회1,9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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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변호사를 만나기로 하고 그에 대한 리서치를 하면서 내게 화두처럼 떠오른 건 '인간이 내는 길'이라는 레토릭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자기의 길을 만드는가.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숱한 모티프에 우연과 필연은 어떻게 개입하는가. 그 과정에서의 충격과 내성의 작동 방식, 감성과 지적 분별력 등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확인하면 그가 이뤄낸 각별한 일들의 본질적 의미가 자연스레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을 추정하고 검증하는 일은 아마도 중세 학자들이 시도했던 금석학만큼이나 막연하면서도 지난한 일일 테지만 말이다.

김예원 변호사의 인상은 단아하면서도 삶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머금고 있는 것이었다. 깊은 강만이 보여주는 윤슬처럼 표정에서 빛이 넘쳤다. 2017년에 개소한 이래 6년째 장애인권법센터를 이끌고 있는 강단이 슬쩍 보인 듯도 싶었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고군분투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장애인 피해자의 권익을 위한 일에 진력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어떤 변화와 성과들이 있었는지를.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가시적인 성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도적 개선이나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상정하거나 그걸 기대하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비유하자면 오리배를 탄 이들이 발을 재재 굴리듯이 그렇게 꾸준히 나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제가 맡은 사건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드물어요. 제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로펌 같은 데서 맡는 사건들은 언론에 나오고 쉽게 이슈가 되기도 하지만요. 저는 관계부처 공직자들을 만나도 사건의 핵심을 추상화해서 설명하곤 했어요."

이 말은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에도 무심하다는 것인데, 그가 공명심에 이끌려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장애인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해온 게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대목이다. 인플루언서가 대세인 시대다. 유명의 정도, 그러니까 인지도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를 결정한다. 그런 시대에 어떻게 이런 태도가 가능한 걸까. 이 의문은 자연스레 인간의 선의라는 게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아갔다. 

 

알려졌다시피 김예원 변호사는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에 장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장애인의 설움과 불편함에 대해 남들보다 각별하고 애틋하게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감수성 형성에 강원도 춘천이라는 고향 마을의 정취와 주변 사람들, 그곳에서의 성장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말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다보니 사회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 사회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지극히 평범한데 사는 것이 힘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면서 그들의 애환이 자연스럽게 보였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구요. 제 경험이 남들보다 그들을 더 가깝게 느끼게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장애가 있거나 지방 시골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다 이타적인 성정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콤플렉스를 갖고 더 출세지향적이 되거나 그악스레 권력을 쫓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은 이랬다.

"제가 장애인 피해자의 인권 보호 같은 공익 활동에 관심을 갖고 힘쓰게 된 건 특별한 계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변에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은데요. 학창시절부터 사법연수원 시절까지, 제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이를테면 교회공동체라든가 학회라든가 공익법률기금 활동이라든가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리고 저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기 위해 애를 썼구요."

김예원 변호사의 말에서 악의는 사람에게 쾌락을 전파하면서 종국에는 추락을 안겨주지만 선한 의지는 아름다움을 감염시키면서 자기 긍정을 공유하게 한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인터뷰어의 의문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 로스쿨 제도 도입 후 변호사들이 사법시험 시절보다 대량으로 양산되었고 소비자들이 법률서비스를 받는 절차는 수월해졌지만 대신 변호사의 사회적 위상은 전보다 떨어졌고 변호사들의 질적 격차도 전과 달리 벌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변호사가 소신을 갖고 공익활동에 나서기가 더 어려워진 환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10년째 수임료도 없는 장애인 피해자 지원을 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좋은 변호사라면 응당 변호사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일 텐데, 그것에 요구되는 사회적 감수성이나 교양은 어떻게 키운 것일까.

"저는 다행히도 제가 하는 일 속에서 끊임없이 배워요. 제 직업 자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하는 직업이니까요. 사실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비즈니스로서의 변호사 업은 예전보다 무척 어려워진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저 스스로 느끼는 자족감이라는 게 있어요. 그 자족감이 주는 기쁨이 다른 모든 유혹을 넘어설 만큼 크죠." 

 

최근 출근길 시위로 이슈가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에 대해 김예원 변호사는 가청력이 높은 특유의 또렷한 발음으로 단호한 답을 내놨다.

"전장연은 우리 사회에 특별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정치인들이나 제도권이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에요.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가 왜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그런데 공당, 특히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되는데, 그건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비난을 전장연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어요."

장애인권법센터 일에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를 돌보느라 늘 시간을 쪼개 쓰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는 다음 달 새로운 경험에 나선다. 현직 판사로 재직 중인 남편의 법관연수에 동행하기 위해 세 자녀와 함께 미국행에 오르는 것. 차제에 그는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는데, 듀크대에서 비지팅 스칼라십 비자를 받아 피해자지원이 어떻게 미국 형사법 체계에서 이뤄지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혹시 공직 제안이 들어오면 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더 배워야 한다면서도 기회가 오면 수용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마지막으로 공익 활동에 나서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요청했더니 이런 말을 돌려준다.

"공익 활동이 예전보다 다변화되어 있거든요. 동물복지, 환경, 이주민 문제 등등으로요. 그렇다면 각자가 살아온 경험과 관련해서 관심이 가는 게 있을 거예요. 관심을 갖는 것,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참여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 관심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의지보다 훨씬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거든요."
 

아, 그렇구나. ‘인간이 내는 길’은 이미 그 사람 안에 초입이 나 있는 것! 좋은 태도가 좋은 삶을 결정한다는 것. 김예원 변호사가 새삼스레 우리에게 알려준 새롭고 오래된 금언일 테다. 김 변호사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다 보는 매체라서 <법률신문> 인터뷰가 타 매체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