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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개선] 시행 1년 넘은 ‘정인이법’…정인이 지키기엔 아직 빈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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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12 10:46 조회7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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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사건 전담팀 만든 경찰
정서학대 진술엔 소극 대처

확대된 지자체 전담공무원
업무량도 늘고 순환근무직
전문성 기르기 어려운 구조

학대아동 즉각 분리에 초점
이후 보살필 인프라는 부족
국회, 책임감 갖고 다듬어야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가 징역 35년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8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장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아동학대와 상습유기·방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부 안모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을 확정했다. 장씨는 2020년 초 정인이를 입양한 이후 2개월여 뒤인 3월부터 정인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같은 해 10월13일 복부에 강한 충격을 가해 숨지게 했다. 

정인이 사건은 한국의 아동학대 대응체계에도 큰 변화를 불러온 사건이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 개정안)’과 그에 따른 정부의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이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연 2회 이상 의심신고 시 즉각분리,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의 권한 강화, 아동학대살해죄 신설 등 전체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정인이법 시행 1년이 넘어가는 지금, 현장 실무자와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정부의 인식 전환을 두고는 긍정적인 평이 나오지만 즉각분리제의 실효성·적절성, 열악한 인프라 등은 문제로 꼽힌다. 국민적 공분에 놀란 정치권이 법을 급하게 쏟아내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충분히 논의·보장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크다. 

■수사기관의 낮은 인식 드러나 

끔찍한 범행만큼이나 경찰의 안일한 대응도 공분을 불렀다. 정인이가 살아있을 때 이미 3차례 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왔지만 경찰은 모두 내사종결 또는 무혐의 처분했다. 아동학대 범죄를 보는 수사·사법기관의 안일한 인식은 누차 지적돼왔다. 2020년 8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신고접수의 측면에서 경찰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보 오류, 미파악 등으로 인해 (아동 전문 기관으로의)사건정보 전달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해 2월부터 10세 미만 아동학대 사건이나 살해·치사 사건 등은 일선 경찰서가 아니라 시·도 경찰청 전담팀으로 보내도록 했다.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현장조사를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는 등 조사권도 강화됐다. 하지만 물증이 남기 어려운 정서학대 등 사건에서는 여전히 아동 진술의 신뢰성을 낮게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인프라는 빠듯 

정인이 사건 이후 정부는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방자치단체에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확대 배치했다. 이들은 아동학대 신고 접수·조사를 경찰과 함께 담당한다. 기존에 신고·조사 업무를 수행하던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대신 사례관리 등 사후 조치에 집중하게 됐다. 민간위탁기관인 아보전 대신 공공이 직접 개입함으로써 공적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조치 이후 업무 가중이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늘어난 업무를 감당할 만큼 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7개 광역시·도 중 ‘연간 의심신고 50건당 아동학대전담공무원 1명’이라는 보건복지부 권고를 충족한 곳은 3곳(서울·부산·경남)에 그쳤다. 강현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목표만큼 충원한다 해도 그 목표치 자체를 1인당 50건 등 빠듯하게 잡으면 늘어나는 신고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아동학대는 조사 업무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데, 훈련시간이 적고 순환보직이라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의 회복’을 담당하는 아보전도 과로에 허덕인다. 아보전은 현재 전국에 73곳뿐이다. 지난해 상담원 1명당 약 76건의 사례를 맡았다. 지나치게 권한을 쪼개 놓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학대 피해자 여럿을 대리해온 김예원 변호사는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의 협업이 아니라 책임전가로 왜곡될 수 있는데, 그를 막기 위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즉각분리는 독 

‘정인이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건 즉각분리제였다. 1년에 2회 이상 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학대판정과 관계없이 즉시 분리해 보호하는 것이다. 정인이가 3회 신고에도 양부모로부터 분리되지 못하고 사망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즉각분리제가 시행된 지난해 3월30일부터 12월31일까지 1043건의 즉각분리가 이뤄졌고, 그중 94.2%인 982건이 학대사건으로 확인됐다. 

즉각분리제는 위기아동을 신속하게 구출할 수 있지만, 아동학대 실무자와 전문가들은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피해아동의 ‘분리 이후’가 세심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적어도 아동의 욕구를 제도 안에서 어떻게 반영할지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해야 한다”며 “원치 않는 시설 분리로 불안에 빠지거나 자해를 시도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밝혔다. 

분리된 아이들을 받아들일 인프라도 열악하다. 아보전 팀장 A씨는 “즉각분리된 아동이 가야 하는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100개도 안 된다. 아예 쉼터가 없는 지자체도 많다”며 “그 경우 쉼터가 위치한 타 지자체로 아동이 옮겨야 하는데 그러면 학교도 전학해야 한다. 가정은 물론 학교까지 옮기며 불안이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강현아 교수는 “즉각분리는 양날의 검이다. 안전을 최우선시한다는 면도 있지만, 분리가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냐는 평가가 선행되기보다는 즉각성만 강조돼 우려된다”며 “분리 이후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한 이슈인데 인프라 문제는 깊게 논의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편의적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기존의 응급조치제도도 아동분리에 효과가 있었고 법원·검찰의 검토 등 제도적 적절성까지 갖췄다. 이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가다듬지 않은 채 즉각분리제 도입은 옥상옥”이라고 했다. 

■40여개 법안 쏟아낸 정치권 

정인이 사건이 이슈화된 2~3개월 동안 국회는 40여개의 ‘정인이법’을 쏟아냈다. 국민적 공분을 의식해 쏟아낸 이 법안들 중 대다수가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즉각분리제의 한계나 열악한 인프라 등 문제도 이 속도전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권이 ‘단기적 대책’을 넘어 구조적·장기적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원 변호사는 “영국은 ‘아동학대’라는 말 대신 ‘가정지원’이라고 쓰는 등 아동인권 선진국은 가정에 집중한다. 손쉬운 행정적 해결책만 찾아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