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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개선] 쌓이는 수사…수사권 조정 1년 ‘누구도 만족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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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1-03 04:46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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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9969.html

 

 

지난해 1월부터 검찰의 직접수사 및 수사지휘 범위를 제한하고, 대부분 수사를 경찰이 맡아 처리하는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고 있다. 수사권이 조정되기 전보다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거나, 수사 진행과 결과에 불만을 나타내는 변호사와 당사자들이 많다.

대표적 불만은 사건 처리 지연 문제다. 기존에는 검찰도 수사 개시에 나설 수 있었던 형사사건을 오롯이 경찰이 맡게 됐기 때문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0월 수사관 1인당 맡고 있는 사건은 17.9건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 15건에 견줘 19.3%가 늘었다.

사건 처리 지연은 경찰 단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는 경찰이 1차 수사를 끝낸 뒤에 할 수 있다. 검사는 수사기록과 처분 결과를 검토한 뒤 필요할 경우 보완수사를 경찰에 요구할 수 있는데, 이 검토 기간에 더해 자신이 넘긴 사건을 다시 봐야하는 경찰의 보완수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 중 3개월 이내에 보완수사가 이뤄진 사건은 절반(56.5%)가량이었다. 19.1%는 3~6개월, 11.4%는 6개월을 넘겨 보완수사가 이행됐다. 6개월이 지나도 보완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도 13%에 달했다. 접수 사건 처리에 과부하가 걸린 경찰이 ‘마감 없는’ 보완수사 요구를 신속히 처리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는 21일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남겨둔 대신 수사지휘권이 사라지면서 민생·서민사건 수사는 지연되고 불충분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사건 접수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채다은 변호사(법무법인 시우)는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하러 갔더니, 경찰이 ‘가해자에게 전화해 줄테니 사과받고 고소장 접수하지 말라’는 경우도 있었다. 복잡한 사건은 접수를 기피하고, 접수를 해도 1년 가까이 지나서야 조사받으러 나오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건이 안 된다고 판단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복잡한 사건의 경우 아예 접수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10월 경찰수사규칙을 개정해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 고소·고발장을 반려할 수 있도록 했지만, 수사권 조정에 따른 일선의 과부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계속 거론되고 있다.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는 검찰 수사권 폐지에 앞서 시행 1년 밖에 되지 않은 수사권 조정 효과와 문제점 등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개정이나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에선 검찰 수사권이 완전 폐지될 경우 현장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가 사라지는 경우 경찰의 불충분한 수사를 보완할 장치가 사실상 모두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김예원 변호사는 “현재 민주당 개정안대로면 경찰이 내린 결론은 바뀔 수 없고, 피해자가 이 결과를 다툴 수 있는 불복 수단이 아예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경찰 출신 손병호 변호사(법무법인 현)도 “개정안이 시행되면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절차가 기존 수사지휘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 관내 경찰서와 검찰의 소통이 수시로 이뤄지는 핫라인으로 상시 가동되지 않으면 범죄자만 만세를 외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다.

다만 경찰에선 현재 나타나는 문제들이 수사권 조정 이후 늘어난 업무량에 견줘 수사인력 충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것이 근본 이유라고 본다. 수사인력 부족→수사부서 기피→베테랑 이탈→신임수사관 충원→전문성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인력 부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업무가 경찰로 넘어왔으면 인력 이관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 인력은 한명도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수사도 문제다. 뇌물‧직권남용, 주가조작 범죄 등은 그동안 검찰이 특화해 수사를 맡아왔는데, 민주당 방안에 따라 검찰 수사권이 사라지면 당장 경찰이 이 모든 범죄를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중대범죄수사청·특별수사청을 만들더라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례에서 보듯 신설 기구가 수사력을 끌어올리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오는 8월부터 곧장 이런 방안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은 민생범죄를 다루는데도 인력 부족 등으로 허덕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특수범죄 수사를 경험한 인력도 그리 많지 않다. 중수청이 설치되더라도 설립부터 안착까지 최소 2~3년은 걸릴텐데 그 사이 6대 범죄수사는 붕 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방안을 두고 법조계에서 ‘날림 입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 중에는 연관된 법률들과의 체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도 있다. 특히 민주당이 국회 패스트트랙을 동원해 만든 공수처법과도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공수처법은 검찰청법을 준용해 공수처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민주당 방안은 검찰청법에 있는 검사 수사권을 삭제한 탓이다. 공정거래법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을 고발할 때는 검찰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률간 정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입법부터 하려 한다는 것이다.

채다은 변호사는 “형사사법체계는 민생과 직결된 문제인데, 민주당이 수사권 조정 이후 미비점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정치적 이해만 따지고 법안을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일 교수는 “검찰 수사권을 분리하려면 적어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다시 부활시키는 등 경찰 수사 통제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